클래스D 앰프가 들려준 선도가 높고 생생한 음
증폭방식을 놓고 음질을 예상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클래스A 앰프라고 해서 언제나 진득하고 매끄러우며 리니어한 음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클래스AB 앰프라고 해서 ‘넉넉한 구동력은 돋보이지만 왠지 특정 대역에서 슬쩍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같은 비난을 받을 수도 없다. 마찬가지다. 클래스D 앰프라고 해서 ‘고효율과 경쾌한 풋워크는 매력적이지만 음은 어쩔 수 없이 딱딱하고 표면은 거칠다’는 식으로 볼멘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역시 세상은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클래스D 앰프에 대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몹쓸 편견을 가졌다. 오디오파일의 길을 접어들면서 처음 접했던 인티앰프가 클래스D 앰프였고, 저음량이나 여린 음에서는 아예 음 자체를 소멸시켜버리는 그 무성의함, 고역에서는 대놓고 바닥을 드러내는 그 얄팍한 밑천에 환장할 뻔했다. 아이스파워 모듈을 정성껏 손본 몇몇 인티앰프에서는 안도했지만, 직열 3극관인 300B를 싱글구동한 파워앰프의 그 촉감에 비하면 갈 길이 정말 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혀 아니올씨다’ 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최근 들어본 몰라몰라의 ‘Kaluga’ 파워앰프, 벨칸토의 ‘Black EX’ 인티앰프, TAD의 ‘M2500MK2’ 파워앰프 등은 모두 클래스D 증폭 앰프였고, 그들이 들려준 소릿결과 구동력, 리니어리티는 거의 클래스A 앰프와 유사했다. 그러면서 PWM 신호의 폭(width)을 고속 스위칭시켜 증폭하는 앰프답게 그 특유의 경쾌함과 준민함, 활달함은 독보적이었다. 요즘 같은 에너지 절약 시대에, 그것도 살이 데일 것 같은 폭염의 나날에, 클래스D 앰프의 서늘함과 고효율은 단연 돋보인다.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들은 프라이메어의 ‘I35 DAC’ 인티앰프는 진보한 클래스D 앰프의 현주소라 할 만했다. 저마다 개성이 강한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3기종에 물려 이종학씨와 주기표씨와 함께 집중 시청했는데, 듣는 내내 감탄했고 메모 하는 내내 분주했다. 게다가 모델명에 들어갔듯이 ‘I35 DAC’은 DAC을 내장해 디지털 음원도 직접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시청시에는 오렌더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N10’과 USB케이블로 연결해 내장 DAC 성능도 마음껏 테스트할 수 있었다.
‘I35 DAC’은 프라이메어가 자체 개발한 클래스D 증폭모듈 ‘UFPD2’을 써서 8옴에서 150W, 4옴에서 300W를 낸다. 사실 클래스D 앰프로 150W는 그리 큰 출력은 아니다. 더욱이 전원부는 클래스D 앰프의 단골 동반자인 SMPS. 과연 프라이메어의 ‘I35 DAC’은 다인오디오의 ‘X38’, 펜오디오의 ‘Sara S’, 모니터오디오의 ‘PL200II’를 어떻게 울렸을까. 그리고 필자는 어떤 대목에서 엄지척을 했을까. 지금부터 그에 대한 가감없는 시청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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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Layla' MTV Unplugged
먼저 에릭 클랩튼의 ‘Layla’를 다인오디오 ‘X38’로 들어보면, 프라이메어의 장기인 경쾌한 풋워크가 단박에 눈에 띈다. 동급 클래스D 앰프들보다 훨씬 사뿐사뿐하다. ‘X38’의 유닛 4개를 보란 듯이 리드미컬하게 울리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음 자체는 온화하고 예쁘지만 이는 다인오디오의 색깔로 봐야 할 것이다. 관심이 높았던 스피커 구동력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역은 충분하다. 내장 DAC의 해상력 역시 AKM 칩 특유의 성정을 반영한 듯 꼬장꼬장하다. 애매하거나 색번짐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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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후 인발 지휘,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 '말러 1번 1악장'
그러나 다인오디오와 매칭한 ‘I35 DAC’의 실력에 무릎을 쳤던 곡은 인발 지휘, 도쿄 메트 로폴리탄 심포니 연주의 ‘말러 1번 1악장’이었다. 스피커 유닛 어디에서 들러붙지 않는 음, 노이즈가 없이 상쾌하고 촉촉한 음, 초반 여린 음에서도 그 존재감을 띄워주는 음이었다. 특히 내장 DAC의 성능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날로그에 가장 근접한 사운드’라는 DAC의 책무를 스스럼없이 해냈다. 디지털 냄새나 거친 맛이 안느껴지는 것만 해도 좋은데, 목관에서 목질향이, 현악에서는 우아함과 달콤함이 스르륵 풍겨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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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곡에서는 또한 앰프의 트랜지언트 능력도 돋보였다. 응답성이 좋은 것이다. 이는 어쩌면 웰메이드 클래스D 앰프가 태생적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인지도 모른다. 스피드, 슬루레이트가 돋보이는 음이지만 그렇다고 헐벗지도 않았고 유닛을 울리다 만다는 느낌도 없다. 응집력이랄까, 파워를 몰아내는 능력이 눈에 띄는 걸 보면 ‘I35 DAC’의 SMPS 실력이 예전보다 상당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음이 분명하다. 8옴에서 150W였던 출력이 4옴에서 정확히 2배인 300W로 늘어난 것이 그 결정적 증거다.
펜오디오의 2.5웨이 3유닛 ‘Sara S’로 바꿨다. 슬림한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인데 입맛이 돋을 만큼 달콤한 소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감도가 86dB에 불과하고 공칭 임피던스 역시 4옴으로 낮아 제대로 울리려며 매칭에 꽤 신경을 써야 한다. 첫 곡으로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을 재생하자 다인오디오 때보다 역시나 달콤한 소리가 나온다. 탄력감이나 배음도 상승했고, 음의 어조 역시 좀더 분명해졌다. 중역대 또한 좀더 실키해졌다.
에릭 클랩튼의 ‘Layla’ 에서는 기타 연주의 표현력이나 텍스처, 표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I35 DAC’의 노이즈 관리 능력은 정말 두고두고 칭찬해도 모자랄 것 같다. 풋워크는 경쾌하고, 중고역대는 싱싱하기 짝이 없다. 다인오디오 때와 비교해보면 재생음의 나이 자체가 훨씬 어려진 것 같다. 인발의 ‘말러 1번’에서는 음들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꼼꼼함이 대단했다.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높은 앰프라 할 만하다. 기막힌 템포감도 계속해서 관찰된다.
모니터오디오의 ‘PL200II’ 에 물렸다. 풀레인지 시청실에 꽤 자주 들었던 3웨이 4유닛 스피커다. 무엇보다 MPD(Micro Plated Diaphragm) 트위터라고 이름 붙인 일종의 AMT 트위터를 장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신속하게 주름을 접을 수 있는 초고속 아코디언을 연상하시면 된다. 이 덕분에 고역 응답특성이 100kHz(저역은 35Hz)까지 올라간다. 공식 임피던스는 4옴이지만 감도가 90dB에 달해 노이즈가 낮은 앰프와 매칭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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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크롤 'Temptation'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에서는 음의 입자가 굵고 윤곽선은 진해졌다. 양감이 다인오디오 ‘X38’보다 많아졌다. 좁은 공간에서라면 자칫 벙벙거리를 수 있는 저음인데 프라이메어가 잘 잡아주고 있다는 인상. 이밖에 펀치력도 늘었고 대역밸런스도 피라미드형으로 잘 잡혔다. ‘다인오디오의 저음과 펜오디오의 중음’이 한꺼번에 들린다고 얘기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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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발의 ‘말러 1번’에서는 기대했던 대로 음의 실체감이나 양감, 부피감이 가장 앞서는 소리가 나온다. ‘PL200II’의 넉넉한 내부용적의 덕도 봤겠지만, 필자의 시선은 아무래도 앰프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이게 과연 클래스D 앰프로 구동한 소리일까 싶을 정도로 풍성함의 급이 다른 것이다. MPD 트위터 덕분에 고역에서는 순간순간 광채가 뿜어나온다. 클래스A 앰프로 이런 촉감을 맛보려면 ‘I35 DAC’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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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피커마다 다른 질감의 재생음을 들려주는 것을 보면, ‘I35 DAC’은 매칭에서 꽤나 취미성이 높은 앰프다.
어느 스피커를 만나서건 낯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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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식의 의기소침한 구석 역시 없다. 통통 튀는 탄력감과 음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다루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그 시크한 외모를 닮아 언제나 당당하고 담대하게 스피커를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선도가 높고 생생한 음. 이 모습이 진정 쿨하고 멋지다.
원문출처 : 풀레인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