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의 신비를 담아
프라이메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301이란 모델이다. 커다란 노브 세 개가 전면에 나란히 박힌 이 제품은, 미적인 센스가 대단했거니와, 낯선 북구산이라는 점 또한 눈길을 끌었다. 아무튼 1990년대를 빛낸 인티 중 하나로 기억한다. 특히, 다인오디오같은, 태생이 같은 곳의 스피커와 좋은 매칭을 이뤄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유로파 사운드가 국내에 런칭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90년대를 돌이켜 보면, 희한하게도 하이엔드 업체들이 인티 앰프를 거대한 프로젝트로 삼아 인상적인 모델을 다수 내놨다. 마크 레빈슨, 제프 롤랜드, 크렐, 매킨토시, 골드문트 등, 명문가의 자제들이 서로 앞을 다퉈 기량을 뽐냈던 것이다.
이런 인티 앰프의 1차 전쟁이 끝나고 약 20년이 흐른 지금, 2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번 전투는 오로지 아날로그 인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은 “DAC 인티”라는, 좀 생소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즉, 이전까지 단품 DAC와 인티를 별도로 구매하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DAC를 인티에 집어넣는, 그야말로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컨셉의 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CD 중심의 소스기가 스트리밍이라던가 USB PC 등으로 변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이런 변화가 오지 않았나 싶다. 그 한편으로 LP의 로망을 간직한 분들에게 별도의 포노단을 선사한다거나 혹은 네트웍 플레이어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등, 아무튼 인티 앰프의 시장이 무척 뜨겁고 또 흥미롭다.
이런 와중에서 만난 프라이메어의 I35라는 모델은 여러모로 흥미를 자아낸다. 즉, DAC를 내장한 것은 좋은데, 이것을 클래스 D라는, 다소 낯선 방식으로 증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아날로그단을 일정하게 거치면서, 독자적인 개발의 증폭단을 쓴다는 면에서 온고지신의 미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입력 신호를 바로 디지털 앰프로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음성 신호를 일단 아날로그로 변환한 다음, 정식으로 증폭단에 넘기는 것이다. 왜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나오겠지만, 무엇보다 아날로그의 장점을 지켜가면서, 클래스 D 방식의 미덕을 최대한 추구한 결과가 아닐까 풀이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대목에서 과연 클래스 A라던가 클래스 AB 또 클래스 D 등 여러 방식이 제안되고 또 응용되는 마당에, 방식간의 차이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클래스 A만 해도 발열이 많이 억제되고, 스피드가 빨라진 반면, D로 말하면 보다 밀도감이 높고, 아날로그적인 뉘앙스가 풍부해진 쪽으로 진화된 것이다. 이 점을 간과하고, 그냥 아 A 혹은 D 하는 식의 단답형 결론을 내는 것은 큰 코 다칠 우려가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방식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클래스 A 타입을 좋아하긴 하지만, 스피커를 바꾸면 어쩔 수 없이 앰프를 바꿔야 한다. 바꿈질 병을 없애면 아예 오디오파일의 자격이 없어지니, 결국 어떤 때엔 A, 또 어떨 때엔 AB를 쓴다. 뭐, D를 쓴다고 해도 음만 괜찮으면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본 기의 가장 큰 미덕은, 시청 내내 절감한 것이지만, 클래스 D보다는 오히려 DAC에 있다고 하겠다. 실은 4~500만원대 단품 DAC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를 들려준다. 이 정도 퀄리티라면 굳이 DAC를 따로 구매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물론 예리하게 AB 테스트를 해서 단품 DAC의 손을 들어줄 애호가도 있겠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은 DAC 칩은 현존하는 최상급 사양을 투입했다. 바로 AKM이란 회사의 AK 4497. 이로써 PCM 신호는 32/768 사양으로 오버샘플링이 되고, DSD는 256까지 커버한다. 뭐 이 정도면, 인티 앰프라는 테두리에선 최상의 솔루션이 제공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클래스 D 방식도 자사의 꾸준한 R&D 끝에 다른 방식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이룩하고 있다. 동사는 이 기술을 “UFPD 2”라고 부른다. 2이라는 형번을 봐서 일종의 개량형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실제로 이전 모델에 썼던 것보다 훨씬 퀄리티가 뛰어나다고 하니, 이 또한 매우 고무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I35가 이번 기사의 주인공인 만큼, 스피커는 총 세 종을 걸어봤다. 처음엔 다인오디오의 X38 이어서 펜오디오의 사라 S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니터 오디오의 PL200이다. X38의 가격이 제일 낮고, PL200이 제일 높다. 즉, 다양한 회사의, 다채로운 가격대를 커버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한 것은, 어떤 스피커를 걸건, 일정한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결코 스피커에 휘둘리지 않고, 증폭기로서의 기본기에 무척 충실할 뿐 아니라, 최상의 DAC 솔루션으로 풍부한 음성 정보도 아끼지 않고 있다. 가격을 생각하면 무척 견실한 제품인 것이다.
특히, 시청 환경이 풀레인지의 작은 시청실, 그러니까 7.5평이라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우리네 주거 환경으로 볼 때, 약간 큰 거실이나 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 조합이면, 굳이 하이엔드로 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장르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확신도 얻었다. 이번 시청에서 부가적으로 얻은 소득이라 하겠다. 참고로 시청 트랙은 다음과 같다.
1) 다이애나 크롤 'Temptation'
2) 에릭 클랩튼 'Layla' (MTV Unplugged)
우선 다인오디오로 크롤을 듣는다. 7인치 우퍼가 두 발이 장착된 모델인데, 아주 넉넉하게 구동된다. 당연히 저역이 풍부하면서도 빠른 반응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클래스 D의 장점이 멋지게 발휘되고 있다. 도전적인 베이스 라인, 시원스런 심벌즈의 타격, 감촉이 좋은 보컬 등, 여러모로 빨려드는 요소가 많다.
이어서 클랩튼을 들으면, 약간 텁텁하면서도 풋풋한 보컬이 흥미롭고, 어쿠스틱 기타의 솔로는 불을 뿜는다. 묵직한 킥 드럼과 베이스의 조화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전 악기들이 오소독스하게 엮여, 듣는 맛을 배가시킨다.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한 퀄리티라 하겠다. 한 마디로 X38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어서 펜오디오를 들으면, 마치 LP를 듣는다고나 할까? 무척 어쿠스틱한 질감에 놀랐다. 크롤의 경우, 보컬에 일체 가식이 없고, 리듬 섹션은 고상하게 전개되며, 피아노의 터치는 영롱하면서 매혹적이다. 아무런 과장이나 컬러링이 없이, 마치 깊은 산속에 숨은 우물의 신선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듯하다.
클랩튼을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의 텐션이나 통 울림이 매우 사실적이고, 짜임새가 좋은 밴드의 위치도 명료하다. 일체 틈이 없이 세션이 전개되는데, 이 부분에서 마치 스튜디오에 온 듯하다. 정교 치밀하면서, 또한 자연스럽다. 듣는 내내 참 내공이 깊은 음이라 탄복했다. 개인적으로는 본 기와 매칭이 좋다는 인상이다.
마지막으로 모니터 오디오. 이것은 리본 트위터를 써서, 약간 고역이 온화한 느낌을 주는데, 여기에 예쁜 중역이 잘 엮여져서,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PL 시리즈는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기서 그 면모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크롤로 말하면, 여성의 느낌이 잘 살아 있고, 일종의 관능미도 발견할 수 있다. 피아노의 터치는 왜 이리 아름다운가. 약간 탐미주의 경향도 발견한다. 오로지 이 보컬만으로도 만족도가 무척 올라갈 정도다.
한편 클랩튼은, 일체 공격성이 없고, 에지도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도 일품이다. 어떤 면에서 우아하기까지 하다. 이런 격조 높은 클랩튼의 연주는 처음이라 당황할 정도.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 어필할 내용을 갖고 있다.
시험 삼아 말러의 '교향곡 1번 1악장' 을 인발 지휘로 들어봤는데, 역시 PL 시리즈의 위력을 실감했다. 널찍하게 펼쳐진 공간에 다양한 악기들이 개성을 갖고 출몰하고, 투티에서 깜짝 놀랄 만한 임팩트가 가해진다. 시청실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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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클래스 D라는 방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본 기를 듣고 깜짝 놀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진화한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클래스 D의 장점, 즉 발열이 적고, 일체 트랜스 험이 없으며, 빠른 스피드 거기에 터무니 없이 저렴한 전기세까지, 그 미덕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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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이후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명품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시청 공간이 다소 작다면, 본 기의 밑으로 I25, I15 등도 포진하고 있으니 참고 바란다. 프라이메어 I35 라면 보다 현실적인 가격으로, 스칸디나비아의 신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원문출처 : 풀레인지( 링크 )